역사란 그 당시 인간이 존재하고 활동한 기록을 바탕으로 쓰여진다. 따라서 역사의 시작은 인류가 자신들이 존재하고 활동한 기록을 한 시점 부터라고 봐야할것이다. 그렇다고 역사가 문자시대 이전, 선사시대까지 포함하기에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확실히 원시인들이 남긴 유물들은 당시 생활양식과 행동양식을 재구성하는데에는 매우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표현하기에는 그 제약이 너무나도 컸다. 그렇기에 문자가 나오기까지는 과거 사건들에 대한 폭넓은 기록은 불가능 했다고 볼 수있다.그래서문명에서는알파벳발명하면고전으로넘어가는건가

(고전시대로 넘어갔습니다)
이런 문자는 이미 선서시대에 그려진 그림으로부터 기원되었는데 그림들이 진짜 글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첫째, 그림들이 언제나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같은 모양을 가져야 했고, 그것들이 구체적인 대상뿐만 아니라 추상적인 개념또한 가리킬 수 있어야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기호들이 추상적인 개념의 표현과 사람의 목소리로 연결시켜야 알파벳이 비로소 나타난다고 할 수 있을것이다.

(괜히 톨킨옹이 위대한게 아니며, 괜히 반지더쿠들이 우월한게 아니다. 그러니 호빗좀;;;;)
이렇게 만들어진 문자들은 소위 말하는 4대 문명에서 널리 쓰였으나, 그 우월한 문명과는 달리 역사문헌들은 형편없었다. 물론 이집트 같은경우 "거대한 역사 덩어리"라 불릴정도로 유서깊고 많은 유물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역사 기록물은 거의 남아있는 것들은 없었으며 또한 있더라도 "위대하신 파라오의 업적"이라던가 "신의 우월함"에 대한 기록이었을뿐, 어떠한 비판도 없었고 허용되지 않았다.

(정신승리의_대표적인_예.jpg)
이러한 이집트인들에 비해 초승달 지역의 사람들은 그나마 좀 더 훌룡했다. 물론 이집트처럼 왕들의 업적과 신들의 이야기들이 주었으나 앗시리아의 관리 이름들과 임기, 그리고 중요한 사건들을 적은 [아시리아 연대기]라던가 기존 앗시리아 시록들을 보충하고 교정하며 엘람과 앗시리아 사이에 벌어졌던 전쟁을 '객관적' 시각으로 다룬 [바빌로니아 연대기], 자서전의 첫번째 예라고 할 수 있는 하투실 3세의 자서전 등 여러 사료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히브리인들보다 상당한 영역을 포괄하면서 비교적 정확한 형태로 역사기록을 남긴 이들은 없다.

(설명이 더 필요한가?)
종교를 떠나서, 성경이 유대민족 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민족들에 대해 (비록 그게 어떠하였음을 제처두더라도) 서술했음을 부정 할 수 없을 것이다. 비록 신이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며 민족의 우월함을 강조하여 종교적 열정을 강화시키려고 하였지만 유대인들은 방대한 저술들을 남겼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히브리인들은 참된 이야기식의 역사서술을 완성하였지만 역사서술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다. 결국 진정한 역사 기록의 기원과 발전은 오리엔트가 아닌 에게해에서 이뤄졌다.

(Ang???)

(고전시대로 넘어갔습니다)
이런 문자는 이미 선서시대에 그려진 그림으로부터 기원되었는데 그림들이 진짜 글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첫째, 그림들이 언제나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같은 모양을 가져야 했고, 그것들이 구체적인 대상뿐만 아니라 추상적인 개념또한 가리킬 수 있어야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기호들이 추상적인 개념의 표현과 사람의 목소리로 연결시켜야 알파벳이 비로소 나타난다고 할 수 있을것이다.

(괜히 톨킨옹이 위대한게 아니며, 괜히 반지더쿠들이 우월한게 아니다. 그러니 호빗좀;;;;)
이렇게 만들어진 문자들은 소위 말하는 4대 문명에서 널리 쓰였으나, 그 우월한 문명과는 달리 역사문헌들은 형편없었다. 물론 이집트 같은경우 "거대한 역사 덩어리"라 불릴정도로 유서깊고 많은 유물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역사 기록물은 거의 남아있는 것들은 없었으며 또한 있더라도 "위대하신 파라오의 업적"이라던가 "신의 우월함"에 대한 기록이었을뿐, 어떠한 비판도 없었고 허용되지 않았다.

(정신승리의_대표적인_예.jpg)
이러한 이집트인들에 비해 초승달 지역의 사람들은 그나마 좀 더 훌룡했다. 물론 이집트처럼 왕들의 업적과 신들의 이야기들이 주었으나 앗시리아의 관리 이름들과 임기, 그리고 중요한 사건들을 적은 [아시리아 연대기]라던가 기존 앗시리아 시록들을 보충하고 교정하며 엘람과 앗시리아 사이에 벌어졌던 전쟁을 '객관적' 시각으로 다룬 [바빌로니아 연대기], 자서전의 첫번째 예라고 할 수 있는 하투실 3세의 자서전 등 여러 사료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히브리인들보다 상당한 영역을 포괄하면서 비교적 정확한 형태로 역사기록을 남긴 이들은 없다.

(설명이 더 필요한가?)
종교를 떠나서, 성경이 유대민족 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민족들에 대해 (비록 그게 어떠하였음을 제처두더라도) 서술했음을 부정 할 수 없을 것이다. 비록 신이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며 민족의 우월함을 강조하여 종교적 열정을 강화시키려고 하였지만 유대인들은 방대한 저술들을 남겼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히브리인들은 참된 이야기식의 역사서술을 완성하였지만 역사서술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다. 결국 진정한 역사 기록의 기원과 발전은 오리엔트가 아닌 에게해에서 이뤄졌다.

(Ang???)
태그 : 역사의역사
덧글
그러고보면 이집트는 정신승리의 원조라고 불러도 될듯...ㅎㅎ
ps-카데시의 병맛은 우주제이이이일!!!!!!!!!!!!!!!!!!!!!!!!!!!1
반스는 개새끼 입니다 반스 깝시다 반스 ㅗㅗ